김인현의 고향 이야기-1
짜장면
김인현 교수(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우리는 5남매이다. 형은 나보다 두 살 위다. 아래로는 두 살 차이로 여동생이 둘이 있고 막내 남동생이 있다. 형과는 많이 티격태격했다. 나이는 두 살 차이이지만, 내가 7살에 학교를 들어서 1년 차이인데다가 나는 조부님 방에 기거를 해서 조부님의 세력의 영향으로 형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어릴 때는 대게 그렇다. 특히 먹을 것이 부족할 때에는 서로 많이 먹으려고 싸웠다. 그렇지만, 내가 형이나 동생들에게 기여한 바도 있다. 확실하게 기억나는 것이 바로 짜장면이다.
성장해서 영덕의 다른 동네에서 자란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축산항 만큼 발전된 곳도 없었다. 1960년대 임에도 불구하고 전화가 있었고 전기도 있었다. 그리고 영화관도 있었다. 이 정도면 면단위에서 최고급 동네가 아니었는가? 이발소도 3곳이나 있고 더구나 오늘의 주제인 짜장면을 제공하는 중국집도 2곳이나 있었다. 이 모든 것이 어항이기 때문에 수산업이 발달해서 그랬다. 어선들이 바다에 나가서 고기를 잡아오면 위판이 되고 현금이 풍성하게 돌았기 때문이다.
당시 짜장면은 특식 중의 특식이었다. 특식이 된 이유는 비싸서 자주 못 먹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어린아이가 되어서 혼자 갈수 없어서 그랬는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1년에 한번 먹는 것이 여름의 짜장면이었다. 할아버지는 손자녀들 중에서 우등생이 한명이라도 나오면 짜장면을 사주신다고 공언을 하셨다. 그래서 우리는 귀한 짜장면을 먹기 위하여 공부를 더 열심히 했다. 내가 1학년 여름부터 시작된 이 행사는 10년 정도 지속되었다.
나는 1학년에서부터 6학년까지 한번도 우등상을 놓친 적이 없다. 한반에서 6등 정도까지 우등상을 주었다. 여름방학이 시작되는 날 통지표를 받아들고 어머니에게 먼저 통지표를 보여주면 어머니는 칭찬을 해주셨다. 그 다음 사랑방의 할아버지 방에 가서 통지표를 보여드리면 “우리 손주, 우등상 받았구나. 할베가 짜장면 또 사줘야 되겠다.”고 하시면서 좋아하셨다.
그러고는, 다른 아이들의 성적은 물어보시지도 않고, 형과 여동생 둘 그리고 나를 데리고 가서 짜장면을 사주셨다. 검은색의 국수같은 것인데, 양념이 들어간 양배추와 소고기가 너무 맛있었다. 형편이 어려워서 이 때 먹고는 일년을 기다려야했다. 왜 그런지 모르지만, 겨울에는 이런 행사가 없었다.
나는 줄곳 우등상을 받아와서 할아버지가 말씀하신 조건을 충족시켰다. 형이나 여동생들도 몇 번씩 우등상을 받아왔다. 그렇다고 하여 할아버지가 여러 번 사주시지는 않으셨다. 한번이었다. 나 같으면 손주 3명이 우등상을 받았으면 3번 사주셨을 것 같은데, 내가 초등을 다닐 때에는 할아버지도 사업의 실패로 아주 어려우실 때였다.
짜장면 집에 가면 재미있었던 것이 면을 만들기 위하여 밀가루 반죽 뭉치를 반복하여 빼면 결국 가느다란 면발이 만들어지는 장면을 보는 것이었다. 신기했다. 큰 뭉치가 저렇게 작은 면발로 나누어지는 것이 큰 기술로 느껴졌다.
짜장면 먹는 행사는 우리가 커서 중학교에 들어가서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도 중학교에는 우등상 제도가 없었기 때문이다. 막내도 줄곧 우등상을 받아왔지만 고등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에게 짜장면이 그리 재미있는 음식놀이가 아니라서 그런지 행사를 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짜장면을 좋아한다. 옛날식 짜장면이다. 서울역 4층에 있는 티원의 짜장면은 옛날식이다. 한번 먹어보니 맛이 있어서 나는 티원에서 꼭 짜장면을 한 그릇 먹고 집으로 돌아가곤 한다.
여름에 있었던 수박서리는 해마다 있지는 않았지만, 짜장면에 이어서 좋은 추억을 남겨주었다. 짜장면 파티는 여름 방학이 시작된 바로 다음날 행사이었다. 보름 정도 지나서 한 여름 더위도 절정에 이를 때가 되면, 할아버지는 우리들에게 수박서리를 해주셨다. “서리”라는 단어는 두가지 의미가 있다. 주인이 모르게 재물을 슬쩍 가져가는 것을 말하기도 하고, 원두막에서 수박 등을 사먹는 것을 말하기도 한다. 여기서는 후자의 의미이다. 이 행사에는 어머니도 동참하는 경우가 많았다. 멀리 염장 너머까지 걸어가야 했기 때문이다. 동생들은 어려서 어머니의 손이 필요했다. 우리들은 앞서거나 뒤서거니 약 30분 이상을 걸어서 수박밭에 도착하면 1미터 이상되는 원두막에 도착한다. 조부님은 잘 익은 수박 몇덩이를 사주셨다. 주인장은 삼각형 모양을 만들어 수박의 내용을 살피도록 해준다. 이를 확인한 다음 수박을 열게 되면 잘 익은 수박이 들어나고 우리는 누구라고 할 것도 없이 달려들어 수박을 감쪽같이 해치웠다.
짜장면은 나에게 우등상에 대한 기념품이었다. 조부님과 우리 손주들이 기쁨을 함께할 수 있었던 좋은 이벤트였던 것이다. 지금 와서 생각하니 내가 배를 타면서 재력이 있을 때에도 조부님께 짜장면을 사드리지 못했다. 그랬었다면 나의 수필이 더 풍족해졌을 터인데,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