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레라이스 단상
김인현 교수(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나는 현재 안식년을 보내려고 동경에 와 있다. 학교 근처에 숙소를 얻어서 혼자 그럭저럭 지낸다. 이미 이것저것 음식을 먹어봐서 별다른 것이 없다. 문뜩 젊은 후배가 며칠 전 하던 말이 생각났다. 동경대 근처의 카레가 참 맛있다는 것이었다. 학교와 숙소를 지나면서 항상 보아둔 카레집이 있다. 좀 허름한 외관에 상호가 불어로 적힌 가게가 항상 눈에 띄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린다. 학교 근처 12월 초의 노란 단풍이 아름답다. 왠지 프랜치 카레가 생각나, 그 가게에 들어갔다. 내부 인테리어부터 범상치 않다. 파리의 에펠탑 사진이 붙어있다. 옆 테이블에 앉은 세련된 중년여성이 먹는 카레가 맛있게 보여 그것을 시켰다. 밥과 카레가 따로 나왔다. 접시처럼 생긴 밥그릇의 오른쪽 1/2은 흰쌀밥이 왼쪽의 1/2은 카레가 들어있었다. 보통은 밥 위에 카레가 부어진 상태로 나오는 데 여기는 그렇지 않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런 카레라이스를 드라이 카레라이스라고 한단다. 맛이 일품이다. 밥에 카레를 적당량 섞어서 먹었다. 동경의 음식은 대게 너무 짠데... 적당하다. 맛있게 먹었다. 마지막을 먹기가 아쉽다. 좋은 음식점을 한 군데 알았다고 큰 아이에게 문자를 보냈다. 아이가 사진을 보더니 대박이라며 이를 드라이 카레라고 한다고 알려주었다.
카레에 얽힌 에피소드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나는 시골 출신이라서 카레라는 것을 먹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고3을 마치고 서울에서 재수를 할 때였다. 어느 학원의 입학을 위한 영어 시험에서 Curry Rice를 주제로 한 질문이 나왔다. 나는 이것이 무언지 몰라서 어려움을 겪었다. 집에 돌아와서 숙모님께 이 단어에 대하여 여쭈어보니 카레라이스라는 것이고, 밥 위에 카레라는 양념을 얻어서 먹는 것이라고 했다. 무엇이 그런 것이 있는지 그냥 잊어버리고 있었다.
1년이 지나 나는 한국해양대학교에 입학을 하게 되었다. 여기서 카레라이스를 본격적으로 탐닉하기 시작했다. 처음 먹어보았는데, 참 맛이 있었다. 튜레이 판을 들고 가면 제1 배식구에서 쌀밥을 한 주걱 떠서 준다. 다음 제2 배식구에 가면 그 밥 위에 검은 색의 카레를 부어주었다. 다른 반찬은 특별히 없다. 난생 처음 먹는 것인데, 별미였다. 해양대학에 입학하는 학생들은 시골 출신들이 많았다. 많은 학생들이 카레라이스라는 것을 처음 먹었을 것이다. 그 맛에 많은 학생들이 반했다. 당시 이중식사라는 것이 있었다. 19살 한창때 한번의 식사로는 모자랐다. 간식도 없을 때이니, 학생들은 한번 더 식사를 했다. 이를 이중식사라고 불렀다. 점심과 저녁 사이에 먹는 것이 아니다. 점심식사 혹은 저녁식사를 시차를 두고 두 그릇 먹는 것을 말한다. 동기생 200명이 함께하게 되는데, 가장 먼저 줄을 서서 음식을 먹은 다음, 뒤에 줄을 서서 다시 배식을 받게 되었다. 문제는 1학년 우리들의 식사시간은 30분으로 정해져있었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중식사를 제대로 하려면 식사를 빨리하고 다시 한번 배식을 받아야하였다. 요컨대, 가장 먼저 식사줄을 서야하는 것이다. 그런 다음 마지막 식사줄에 다시 서야했다.
나도 그런 이중 식사하는 학생들 중의 한 학생이었다. 이중식사는 다양한 식단의 경우에 이루어졌지만, 카레라이스가 나오는 날에 특히 학생들이 유혹은 느껴서 자리잡기가 쉽지 않았다. 어떤 경우에는 준비한 카레가 부족한 경우도 있었다.
당시 카레는 배고팠던 우리 한국해양대학 사관생도들의 허기를 채워주고, 맛과 향이 곁들인 한끼를 제공하는 역할을 했다. 40년이 지난 지금 카레라이스는 장년의 나에게 옛 추억을 되살려주는 또 하나의 역할을 한다. 동경대 정문 앞에 있는 파리카레집을 앞으로도 자주 애용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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